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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양 여운형(1884-1947.7.19) 1907년 경기도 양평에서 국채보상운동의 지회 설립을 시작으로 1918년 상해고려민친목회와 신한청년당 조직을 주도하였으며, 1919년 재일 유학생의 2.8독립 선언과 3.1운동 등에 관여하였다. 상해임시정부 의정원 의원 등을 역임하였다. 1929년 상하이에서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3년을 선고받고 1932년 9월 26일 만기 4개월을 앞두고 대전형무소에서 가석방 되었다. 이후 조선중앙일보사 사장(1933), 조선건국 동맹위원장(1944),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1945) 등의 중책을 맡았으며, 김규식.김창숙 등과 함께 통일정부수립을 위해 노력하다가 1947년 7월 19일 테러로 서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