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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평리 마을 유래비 우뚝 솟은 덕의산(도덕봉) 자락 아래 마을 앞을 휘돌아 흐르는 남천(보청천)이 포근하게 감싸 아늑하게 자리 잡은 우리 마을은 본래 청산현(靑山縣) 현내면(縣內面) 저전리(楮田里)에 속해있던 마을로 1914년 행정구역을 조정할 때 청산현을 옥천군(沃川郡)에 소속시키면서 청산면(靑山面)이라 하였고, 이때 저전리(楮田里)를 지전리와 교평리로 나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교평리라 불리우게 된 것은 마을을 합하여 이름 지을때 향교(鄕校)란 말의 교(校)자와 평상목(平上目)의 평(平)자를 한자씩 취하여 교평리(校平里)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청산학교는 조선 태조7년(1398년)에 창건하였으나(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자 선조35년(1602년) 백운동에 재건되었다가 효종5년(1654년)에 우리 마을로 이전한 향교가 자리잡고 있기에 향교말(생기말)로 더 잘 불리우고 있으며 데골(뒷골), 평상목의 자연마을이 있다. 우리 마을은 효와 예로 웃어른을 공경하고, 단결력이 강한 마을이며, 오랜 옛날부터 정월대보름이 되면 강줄을 엮어 마을 중심에 위치한 향교를 중심으로 윗말과 아랫말로 나뉘어 강줄 줄다리기를 한 후 강줄을 둘러 메고 농악대를 앞세워 한다리(청산대교)로 향하여 다리밟기를 하고 떠오르는 보름달을 향하여 강줄(달집)을 태우며 마을의 안녕과 한해 소망을 기원하는 세시풍습 놀이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 마을은 이봉성(李鳳成) 전 법무부장관이 출생하였으며, 동요작곡가 정순철님이 출생한 곳이기도 하다. (대표작곡: 짝짜꿍, 진달래, 형제별, 졸업식 노래 등 다수 작곡) 우리 마을 178가구 392명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아들 딸을 사랑하며 어려울때 서로 상부상조하고 협동 단결하여 선조들이 가꾸고 지켜온 전통을 고이 간직하고 기리고자 전 주민과 출향인들의 한마음 한뜻을 담아 이 유래비에 새겨 자자손손 만대에 길이 남기고자 한다. 2012년 5월 일 청산면 교평리 주민.출향인.일동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