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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겨레의 의사 이공석(李公錫)의 무덤이 있다. 겨레를 위하여 그 목숨을 바쳤다. 우리 어찌 그 유해이나마 소홀히 하랴. 그의 자(字) 사옥(士玉)이요 선세 경주인으로서 청송에 옮아 살았으며 그의 몸 단소(短小)하였으나 담력(膽力)세었고 애국심 강렬(强烈)하여 4229년(서기1896년)병신 그 전년 사변(前年事變)의 보 향곡(報鄕曲)에 전파되어 의병이 일어나자 그는 약령십오(弱齡十五)로 분연히 총을 메고 왕참(往參)하였으며 4239년(서기1906년) 병오 그 전년협약(前年脅約)의 보(報)로 또 의도(義徒)를 이끌고 정공용기(鄭公鏞基)의 산남의진에 참맹(參盟)하니 정공은 그 의용(義勇)을 장(壯)히 여겨 처음 좌포장으로 하였더니 정공이 적에게 속아 붙잡히고 이공한구(이한구) 의사(義師)를 대신 거느리자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