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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린을 당하자 토복을 기약하였으나 몸에 혹독한 고초를 당하고 끝내 순국하였으니, 어찌 참으로 웅대한 의사가 아니겠는가? 어느 날 그의 손자 광삼, 광진씨가 나에게 묘갈명을 부탁하니, 나는 '공의 은덕과 의연한 절개는 마땅히 뛰어난 문장가를 얻어 밝혀야 할 일인데, 나 같이 못난 사람이 어찌 감히 이 일을 감당하겠는가?'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내가 어려서부터 여러 번 공을 뵙고 마음속 깊이 흠모하고 감복하여 차마 끝내 사양하지 못하였다. 다음과 같이 명을 잇는다. 면암선생 문하엔 참으로 어진 선비가 많으니 연원이 있고 근원이 있어 매우 길게 흐르네. 독실한 공부 밤낮으로 스스로 힘쓰고 종사가 이미 무너지니 왜적 토벌에 힘을 다하네. 현자를 높이고 도를 지키는 일 마음에서 나오니 진실하도다! 우리 공 빛나도다! 그 절개여. 말세에 모범이 될만하니 누가 흠복하지 않으리. 빗돌이 새긴 나의 영원토록 사라지지 않으리라. 단기 4312년 기미 6월 상순 의령 남대희는 삼가 짓는다. 종질 영상은 삼가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