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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원 옆으로 와서 보니, 과수원 가운데 묘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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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완은 전라북도 고창(高敞) 사람이다. 1919년 3월 15일 무장읍(茂長邑) 장날을 이용하여, 이용욱(李用郁)·김용표(金容杓)·김상수(金相洙)·이준구(李準求)·김진호(金辰鎬)·박흥선(朴興先)·오태근(吳泰根)·박흥수(朴興洙)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그는 광무황제(光武皇帝)의 국장 참관 차 상경하여 서울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한 후 귀향하여, 이용욱·김용표 등의 유지들과 만나 서울의 정황을 전하고, 3월 15일의 무장읍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3월 15일, 계획대로 장터에 많은 시위군중이 모이자, 미리 제작·등사해 두었던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나누어주고, 이들의 선두에 나아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이어 시위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선두에 세우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남문을 지나 면사무소와 경찰주재소로 시위 행진하였다. 이때 긴급 출동한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으며, 이해 5월 21일 광주(光州)지방법원 전주(全州)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