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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훈대부 죽계 고공 묘갈명 병서 옛날 섬 오랑캐가 창궐할 적에 면암선생이 남하하여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킬 때, 고수남(고석진)옹이 지휘봉을 잡고 전술을 폈는데, 수옹을 전군(후군)으로 하고 좌우군이 힘을 모아 그 첫머리에 간 사람이 바로 통훈대부 죽계 장흥 고공 휘 제만, 자 치범이다. 고씨는 장흥백 휘 복림을 시조로 삼고 벼슬이 계속 이어져 대대로 이름난 명문거족이 되었다. 조선에 들어와 휘 신부라는 분은 태종의 구계(친분이 잇는 사이)로 호조참의를 제수 받았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여러 대를 지나서 휘 덕붕, 호 여곡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창도하여 여러 차례 전공을 세우고 승지를 추증 받앗다. 이분이 낳은 후 수겸은 병자호란 때 동지들과 의병을 일으켰는데, 수원에 이르러 화의가 이루어졌다는 소리를 듣고 통곡하며 돌아왔다. 이분이 낳은 휘 여흥, 호 요은은 윤미촌(윤선거)의 고제로 학행이 깊고 돈독했으며, 명재 윤문성공[윤증]이 묘비명을 짓고 고을 사람들이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낸다. 이 분이 낳은 휘 재혁, 호 왕서는 명재문하에서 학업을 받고 문학이 드러났다. 이분이 낳은 휘 우열, 호 옥호는 학문이 박식하고 행실이 돈독하니 공에게 6세조이다. 고조는 극해이고, 증조는 봉환이며, 조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