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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교의 창도와 삼례 취회 예향천리 마실길 동학농민군 진격로 동학교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는 1824년 10월 26일 경주시 가정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이고 수운은 그의 호다. 그는 한문을 수학하고 유도 불교 선도는 물론 서학인 야소교(예수교)에 이르기 까지 제자백가를 섭렵했고 시장에서 장사를 하기도 하였다. 그는 세상의 온갖 부조리와 말세적인 혼란속에서 다년간 유랑생활과 고행끝에 1860년 각도하니 무극대도의 동학이 이에서 비롯되었다. 교리의 근본은 시 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의 주문을 통해 기원한다. 즉 사람은 안으로는 영이 있고 밖으로는 기화가 있으며 내몸에 신령 곧 하느님이 있으며 음양운행의 자연조화에 따르며, 그 도를 꺠달아서 지혜롭게 받든다면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시 천주사상은 2세교주 최시형에 이르러 사람 섬기기를 하늘같이 하라 하였으며 뒤에 사람은 곧 하늘이다 하니 이는 유교사상을 기본이념으로 하며 신분제가 엄연한 조선왕조에서 용납될 수 없는 사상이었으므로 이는 서학과 더불어 타도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하여 1863년 최제우는 동학교의 시 천주도 서학의 천주와 같은 범주로 사학으로 몰려 대구 형옥에서 사형을 받기에 이른다. 이후 1892년 10월 충청도에서 교조선사 최제우의 억울한 죽음에 대하여 신원운동이 시작되었고, 이어 11월 3일에는 전국 수천명의 교도들이 삼례에 운집하여 1, 수운선사의 신원 2, 탐관오리의 제거 3, 교당설치등을 요구하는 사회문제로까지 확산시키기에 이르렀으며 아울러 이 무렵부토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김덕명 최경선등은 사회변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키워 왔으며 일반인도 도담보다는 난리 이야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갖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