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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르는 마당은 마치 물건을 사고파는 저자로 변하고 말았다. 백성에게 거둔 세금과 물건이 국고에 들어가지 않고 도리어 세도가의 사복만 채우고 있으며 나라에는 빚이 쌓여있는데도 이를 갚을 생각은 하지 않고 교만과 사치와 음란한 생활만을 일삼으면서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꺼릴줄을 모른다. 이에 이르니 온 나라가 짓밟힐대로 짓밟혀 결단이 나고 만민은 도탄에 빠져 허덕이고 있다. 고을 아치들의 참학이 이러하니 어찌 백성이 궁하고 또 곤하지 아니하랴. 백성은 나라의 근본인데 근본이 쇠잔하면 나라는 반듯시 멸망하고 말것이다. 이러한 이치인데도 국가를 보전하고 백성을 편안케할 방책은 생각지 아니하고 밖으로 향제를 꾸며 오직 일신의 온전만을 도모하며 헛되이 국록과 지위를 도적질하고 있으니 어찌 이것이 옳은일이라 하겠는가. 우리들은 비록 초야에 버려진 백성이지만 이 땅세서 나는 곡식을 먹고 또 옷을 얻어 입고 사는 터 어찌 앉아서 나라의 멸망하는 꼴을 보고만 있겠는가. 온 나라가 마음을 같이 하고 억조창생이 뜻을 모아 이제 의기를 들어 나라를 보전하고 백서을 편케하고자 사생을 같이 하기를 맹세하고 일어섰으니 오늘의 광경이 비록 놀라운 일이기는 하겠으나 결코 부려워 하거나 흔들리지 말고 각자의 생업에 충실할지며 함께 다가올 태평성세를 빌어 성상의 덕화를 고루입게 되었면 천만다행이겠노라. 서기 1894년 3월 20일 호남창의소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