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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 부안 동학농민군 집강소 [부안 도소, 신원재(愼遠齋)] 전라북도 부안군 행안면 송정2길 13-4(역리 283) 이곳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부안 동학농민군이 머물며 자치를 실현한 부안 도소(道所)였다. 도소는 집강소(執綱所) 또는 도회소(都會所)라고도 한다. 집강소는 우리 역사에서 민중이 최초로 쟁쥐한 민관 협치(協治) 기구로 평가받는다. 1894년 7월 6일(양력 8월 6일), 동학농민군 지도자 전봉준과 전라 감사 김학진(金鶴鎭)이 합의한 관민상화(官民相和)의 원칙에 따라 동학농민군이 민중의 입장을 대변하며 자치(自治)를 실현한 소통의 공간이었다. 집강소는 동학농민군이 주도하여 설치한 지역, 동학농민군과 관(官)이 공존한 지역, 보수적인 유생을 중심으로 동학농민군에 대항한 지역 등으로 나뉜다. 부안 도소는 부안 현감을 비롯한 지역민의 요청에 따라 김낙철(金洛喆) 대접주 등 동학농민군이 주도하여 폐정개혁을 추진하는 한편 부안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였다. 부안 도소로 사용한 신원재는 부안에 세거하는 신씨의 중시조 덕무공(德武公)을 모시는 덕무공파의 종중 재각이다. 재각 뒤편은 신씨 선산이 있는 고성산(古城山)이다. 편액은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이 썼다. "그때 부안 현감 이철화가 향촌의 유생(儒生)과 관아를 이방과 호장 등 아전(衙前)과 상의하고 여러 차례 와서 요청하기를, '고을 일이 어떤 지경이 될지 알 수가 없으니, 들어와서 성(城)을 지켜 외적(外敵)을 막아달라.'고 했기 때문에, 갑오년 4월 1일에 교인 수백 명과 함께 서도(西道) 송정리(松亭里) 신씨(辛氏)네 재각(齋閣)에 가서 도소를 설치하였다." 『김낙철 역사(金洛喆 履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