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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현(黃土峴)에서 관군을 격파하다 / 예향천리마실길 동학농민군 진격로 황토현 전투는 두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동학농민군이 황토현에 먼저 자리를 잡고 야밤에 기습해 올 것에 대비하여 본진을 비워놓고 있다가 기습해 오는 관군을 무찔렀다는 설과, 또 하나는 관군이 진을 치고 해가 저물어 저녁밥을 먹느라 흩어져 있을때 농민군이 기습하여, 관군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무너지고 도망쳤으며, 죽은 사람이 헤아릴 수도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어찌 됐던 관군과 동학농민군과의 최초의 접전이며 농민군의 첫 승리였다. 그들 관군은 영병과 향병 그리고 보부상들로 구성되어 억지로 끌려나온 사람들이어서 농민군들과 싸워야 할 특별한 명분이나 의지가 있을 수 없는 반면, 동학농민군들은 썩어빠진 사회구조를 도려내고 새 세상을 열겠다는 강한의지로 뭉쳐 있었기에 감히 적수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대승을 거둔 동학농민군들은 전주영을 향해 북으로 올라가지 않고 남으로 진군하였다. 그것은 전주에 경병(京兵)이 내려왔다는 소문도 있고 도 한편으로는 새를 불리기 위한 전술일 수도 있었다. 그리하여 관군을 격파했다는 소문에 정읍 흥덕 고창 무장은 모두 손쉽게 장악할 수 있었다. 4월 7일 정읍현 장교청으로 들어가 옥을 부수고 죄수 6명을 석방하고 창,검 등 많은 무기를 빼앗았고, 8일 11시경 흥덕으로 쳐들어가 군기고를 부수고 탄약과 창, 검, 조총 등 무기를 노획한 후 고창, 무장, 영광, 함평을 거쳐 장성에서는 서울에서 내려온 경군과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며 이어 전라도 수부인 전주성에 무혈 입성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