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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 장군 유시(遺詩) / 예향천리마실길 동학농민군 진격로 전봉준 장군은 공주 우금티 전투에서 크게 패한뒤 논산, 구미란, 그리고 태인전투를 마지막으로 동지 몇명과 함께 11월 29일(갑오년) 입암산성(정읍시 입암면)으로 들어가 밤을 지새고, 다음날 백양사에서 하룻밤을 묵은뒤 순창군 쌍치면 피노리에 이르러 지난날 친구 김경천을 찾았다. 김경천은 전봉준을 밎이 해 놓고, 전주감영 퇴교로 이웃에 살고있는한신현에게 밀고했고, 한신현은 김영철, 정창욱 등 마을사람들을 동원하여 전봉준을 포위했다. 전봉준은 뜻하지 않은 위기에 놓이자 담을 뛰어넘어 도피하려다 몽둥이로 다리를 얻어 맞고 붙잡히고 만다. 전봉준에겐 이미 현상금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전봉준은 1895년(을미년) 3월 10일 등 5차례에 걸쳐 일본영사의 심문을 받았다. 이때에 "나는 바른길을 걷고 죽는 사람이다. 그런데 역율(逆律:반역죄)을 적용한다면 천고에 유감이다"라고 개탄했다. 결국 1895년 3월 29일 사형선고를 받고, 손화중 김덕명 최경선 성두환 등과 함께 다음날인 3월 30일 새벽 2시 교형(絞刑)이 집행되었다. 이 때 시 한편을 남겼으니 다음과 같다. 時來天地皆同力(시래천지개동력) 때가 오니 천하가 모두 힘을 같이 했건만 運去英雄不自謨(운거영웅부자모) 운이 다하니 영웅도 스스로 꾀할 바를 모를래라 愛民正義我無失(애민정의아무실) 백성을 사랑하는 정의일 뿐 나에게는 과실이 없나니 愛國丹心谁有知(애국단심수유지) 나라 위한 오직 한마음 뉘 아는 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