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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 부안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김낙철과 쟁갈 마을 / 전라북도 부안읍 부안읍 봉덕리[長曷里] 부안 동학의 대접주이며 동학농민혁명 지도자였던 김낙철(金洛喆)의 본관은 부안, 자는 여중(汝仲), 도호는 용암(龍庵)이다. 1858년 부안군 부안읍 봉덕리 쟁갈 마을에서 태어났다. 쟁갈 마을은 안쟁가리.용성리.새멀,송학동 등 4개로 형성되었는데, 김낙철은 새멀에서 생활한 것으로 추정한다. 수십 명의 하인을 거느린 천석꾼이었다고 하며, 동생 낙봉과 함께 1890년 동학에 입도하였고, 그의 포교로 부안의 동학 교세가 급격히 성장하였다. 김낙철은 1893년 교조 최제우의 사면복권과 동학을 공인받으려는 교조신원운동으로 전개된 광화문 복합 상소와 보은집회 당시, 전라도 책임자로 도도집(都都執)을 맡았다. 고부봉기 이후에는 도소를 설치하여 부안의 치안과 질서를 유지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굶주림에 허덕이던 제주도민이 부안에서 식량을 구할 때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아사(餓死)를 면하게 되었다. 김낙철은 2차 봉기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이후 동학을 계승한 천도교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쟁갈 마을은 부안 동학의 대접주이며 동학농민혁명 지도자였던 김낙철의 삶터였다. "이번의 변란(變亂)으로 뜻밖의 요행(僥倖)을 얻은 것은 부안의 지방민이었다. 사건이 일어난 이래 오로지 민심을 진정시키려, 각종 세금의 독촉을 중지하고 송사(訟事)의 재판도 멈추어 백성에게 알랑거리는 것 같았다." 『전라도고부민요일기(全羅道古阜民擾日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