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page


217page

서종채 선생은, 전라북도 고창(高敞) 출신이다. 1907년 40명의 의병을 소집하여 활약하다가 기삼연(奇參衍) 의진에 합진하였다. 1908년에는 이대국(李大局) 의병장의 선봉장으로 활약하였다. 의병장이 전사한 후 200여 명으로 부대를 재편성하여 함평(咸平)·영광( 光)·무장(茂長)·부안(扶安)·고창(高敞) 등지에서 여러 차례 적과 접전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09년 이후에도 계속해서 의병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군자금 조달에도 주력하여 많은 총기를 보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일군에게 체포되어 1913년 7월 10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소위 살인·강도 및 '총포·화약류 취체령' 위반으로 징역 15년형을 언도받았으며, 동년 9월 2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되었다. 1914년에 20년으로, 1915년에 15년으로 감형되었으나 1916년 4월 22일 대구형무소에서 심한 고문의 여독으로 옥사 순국하였다. 그가 체포되고 난 후에도 부인을 비롯하여 온 가족이 일경의 탄압을 받았음은 말할 것도 없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8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