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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5월 26일에 대산면 광대리 신평 고향집에서 태어나 천성이 순후하여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고 제형에게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지기가 장중하여 모든 사리에 대한 시비의 판단이 한칼로 자르듯이 공정함에 향리 사람들이 추복하였다. 경술년의 국치를 당하자 공은 나라 잃은 백성으로 자처하여 적개심을 품고 지내다가 마침내 정읍을 중심으로 한 전라북도 일원을 동하여 많은 동지를 수합하여 신인동맹이란 종교단체를 비밀리에 조직하고 배일사상을 고취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중 일제는 그 침략의 마수를 중국대륙에까지 뻐처 마침내 세계대전이 발발되자 우리 민족에 대한 강압과 혹사는 더욱 극에 달한지라 공은 많은 동지들과 구국결사대를 결성하고 적의 후방을 궤란하기 위하여 당시 김제 주둔 왜군 헌병대와 김제경찰서를 습격하기로 치밀한 계획이 서있는바 비인간적인 한 배신자의 밀고로 거사직전에 발로되어 공 등 동료 40여인이 왜경에 피체되었으니 즉 경진년 1940년 12월 15일이다. 그 후 3년간을 미결인으로 혹독한 고문에도 불굴하며 조선인이 자기 나라를 찾아 독립하겠다는 일이 무슨 죄가 되느냐 하고 끝까지 항거하며 불복하다가 계미 1943년 9월에야 1년 징역형을 선고 받고 전주형무소에서 복역하고 귀가하였으나 고문의 여독으로 신음하든 중 이듬해 을유 1945년 8월 15일에 조국이 광복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병석에서 밖으로 뛰쳐나와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고 이제야 나의 소원이 이루어졌으니 사무여한이라 하여 크게 기뻐하였다. 경자 3월 25일에 별세하니 향년 76이요. 대산면 광대리리 신평 후록 묘좌원에 안장하였다. 아! 장하도다. 공은 초야 일필부로 평생동안 조국을 광복하는 일에 전심전력하다가 일생을 마쳤으니 저 한말의 고관대작으로서 판군매국한 역도들이 지하에서 무슨 면목으로 공을 대하리요. 천도가 유상하여 공이 별세한지 38년이 된 정축 광복절에 정부에서 공을 독립유공자로 선정하고 대통령이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