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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을 품고 통분을 참으며 스스로 깊은 뜻을 지니고 만분의 일이라도 원한을 갚아 부끄러움을 씻고자 절치부심하며 세 번이나 외딴 섬에 유폐되고 27년 동안 동굴에서 살았으니 모두 48년을 감옥에서 지내면서도 끝까지 도의를 굽히지 않앗다. 또 우리 하늘과 땅을 하늘과 땅으로 여기고, 내 집과 밭을 집과 밭으로 여겨서 동굴을 '독선', 움막을 '피서', 단을 '망오'라 하엿으며, 마음은 진나라를 황제로 섬기는 일을 수치로 생각하고 몸은 한나라 왕실을 중흥시키는 의리에 두었으니 옛날에 이른바 '살기는 어렵고 죽기는 쉽다.'는 말이 공을 두고 한 것이 아니겠는가? 아! 옛날에 충신과 의사가 자신을 잊고 나라에 목숨을 바친 사람은 평소 축적된 바가 있지 않으면 해낼 수 없다. 공의 휘는 전구이고, 자는 우보이며, 호는 지은이니 전주인이다. 관직은 의군부 순찰사 소경원 참봉을 지냈다. 문도들이 수백 명이며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자들은 14인이니 권석규, 권응규, 김기환, 정휴직, 봉인학, 봉택규, 김천현, 이병중, 권영옥, 최준식, 정영원, 서치문, 정휴문, 최익렬이다. 후학들이 단을 쌓아 그를 기념하기 위하여 봉창조, 권태원, 권영봉이 찾아와 나에게 새길 글을 물으니, 사양하였으나 그러지 못하고 단지 의롭게 마친 한 절개를 들어 기록한다. 때는 기유년(1969) 우수날 진주 정익환은 삼가 짓고 쓴다. 왕년에 완성하지 못한 것을 탄식하였는데, 12년이 지난 신유년(1981)에 14명의 자손들이 각각 성력을 보태어 유지에 세우고 드디어 방명을 새기노라. - 자료 출처 : 고창의 의병운동과 독립운동가 (사)고창문화연구회 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