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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계 고공 의적비 이곳 흥성현 죽림동에 있는 6척의 큰 비석은 사람들로 하여금 처다 볼 수록 의기로운 마음을 일으키게 하니 바로 죽계 고제만, 자 치범의 의적비이다. 공은 장흥인으로 여말 절신 참의를 지낸 신부의 후에이며, 임진왜란 대 의병을 모은 여곡 덕붕과 노서(윤선거)의 수제자인 요은 여흥이 중세에 드러난 조상이다. 철종 경신년(1860) 8월 21일에 죽림마을 집에서 공이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학생공 성진은 재주는 있었으나 수명이 짧아 공이 태어난 지 겨우 첫 돌만에 돌아가셨다. 어머니 나주 임씨 유인은 현숙하여 절개를 지키고 공을 가르칠 때 엄한 부도가 있었으며 비록 작은 실수라도 용서하지 않았다. 일을 살필 때가 되자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애통해하였고 사람들이 아버지를 부르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눈물이 줄줄 흘러 옷깃을 적시곤 하였다. 공은 다른 형제가 없어 홀로 어머니를 봉양하면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았고 혹시라도 어머니의 마음이 상할가 염려하여 기쁜 얼굴로 뜻을 받들어 순종하여 슬픔과 근심이 병에 이르지 않아 천수를 누린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