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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곡마을 유래 이 마을은 1480년경 남양인 홍인준의 아들 홍병, 홍달 두형제가 장흥에서 이곳을 수차 왕래하던 중 지형상으로 마을을 이룰만한 곳이며, 장래 후손들이 번성함이 크게 역사할 것을 알고 이곳에 정착 "까끔실"이라는 마을 이름을 두고 살아 오늘까지 이루게 되었다. 500년의 역사하에 뒤로 증광산 줄기를 타고 성제가 우뚝솟아 있고 양옆으로 산줄기가 마치 어머님의 따뜻한 손길처럼 마을을 감싸주고 있으며 저 멀리 머리언진산이 평풍처럼 펼쳐있어 훈훈함을 주며 마을 앞에는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고 주변에 금과 사금이 많이 있다하여 금곡(金谷)이라 하였다가 주민들의 마음 씀씀이 너무도 비단 같이 곱고 순박함을 이름하여 금곡(錦谷)으로 하였다. 민족독립운동의 지도자요 대종교(단군신앙)의 창시자요, 성인으로 추대받은 이마을 출신 홍암 나철(영인) 선생님께서 태어나신 마을이다. 이어 후손들이 다방면에 진출하여 박사, 법관, 의사, 공무원 등이 활동하고 있어 축복을 많이 받고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인구 144명(남 77명 여 67명) 가구 29호, 면적 143.2ha 특산물은 맛 좋은 딸기가 유명하다. 마을의 숙원사업인 회관 건립을 1999년 9월 21일 군의 지원과 동민 그리고 원근 각지에서 후손들이 아낌없는 후원과 땀을 모아 20평 규모의 회관과 부속건물을 건립하게 되어 영광과 희망찬 새 천년을 기약하며 그 뜻을 두고두고 보고자 이 작은 돌에 새겨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