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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시 돌산읍 군내리 193 여수 돌산초등학교 주재년 열사 모교에 단재 신채호 모과나무 기념식수 표지석을 찾았다 2013년에 기념관과 묘소를 찾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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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연은 1943년 3월 여수군 돌산면 공립국민학교 제6학년을 졸업하고 집안일을 돕고 있었다. 그는 국민학교 재학시절부터 항일의식이 투철했다. 1942년 음력 12월 초순경, 그의 형 재연(在淵)의 나병을 치료하기 위해 와 있던 일본인 산원낙섭(山元洛燮)로부터 '대동아전쟁이 장기화되면 일본이 패망하고, 한국은 미국 등의 힘을 빌려 독립해야 한다'라는 말을 듣고, 1943년 9월 초순경, 여수에서 조국독립의 실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말을 유포하였다. 그리고 동년 9월 23, 24일경, 나무하러 가는 도중 돌산면(突山面) 율림리(栗林里)로 가는 도로 민가 목화밭 담장에 '조선일본별국(朝鮮日本別國)', '일본(日本)놈 져라', '조선만세(朝鮮萬歲)', '조선지광(朝鮮之光)'이라는 글자를 새겼다가 사흘 만에 여수경찰서에 체포되었다. 이때 일제는 경비정 7~8척과 경찰 100여 명을 동원해 경적을 울리며 온 마을을 수색했으나 범인을 잡지 못하였다. 이에 주민들을 모아놓고 마을에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하자 자수했다고 한다. 주재연은 1944년 1월 21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에서 조선임시보안령 위반으로 징역 8월, 집행유예 4년을 받아 풀려났으나 고문의 휴유증으로 이듬해에 숨졌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