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毁撤碑(훼철비) 효자 김수명은 1807년 증 가선대부 이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김종우와 정부인 강릉유씨의 장남으로 청풍도호부 근남면 방곡에서 태어났다. 그의 행적은 후대에 상세히 전하여진 바 그가 타계한 13년 후인 1885년 그의 효행을 기려 사헌부 감찰에 추증하고 다시 7년 후 권필상을 필두로 한 충청도 유생들의 탄원에 따라 효자정려를 내렸듯이 그의 효행의 탁이함은 당대를 뛰어 넘어 전해져왔다. 근남면 사태머리 인근에 있던 정려는 1907년 그의 삼남인 의병장 김상한의 의병전쟁시 훼철된 이래 잊혀진 채 남아 있다가 2006년 그의 아들인 상린 상귀 상한 상룡의 자손들과 제천시민들의 청원을 제천시장님과 제천시의회가 받아들여 의미있는 복원에 이르게 되었다. 효자비에 음각된 예조 입안의 번역은 좌측에 있는 비의 내용과 같으며 효자정려 훼철의 빌미가 되었던 그의 삼남인 김상한은 경북 의병 총대장으로 독립 운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겨 1977년 오월 일경의 보고에는 그를 수괴라 칭하며 "목하 안동 순흥 단양 청풍 문경 영춘의 각군에 있어서의 총대장으로 부하 600~700명을 갖고 이명상 김상태라는 자를 소모대장으로 이춘삼을 좌익 원상선을 우익대장으로 하고 김성천을 도령장으로 하여 본진을 순흥군에 설하고 각처에 횡행하고 있던 자"라고 기술하고 있다 효자 김수명은 의병장 김상한을 낳아 우리 나라 역사에서 특출한 전범(典範)을 수립하였으니 그 효행의 가치는 더욱 빛나고 있다. 2006년 10월 일 효자정려 복원 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