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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4월 27세때 단양.제천.영주.예천 등지에서 의병을 규합하여 의병장이 되었는데 그는 호(號)와 같이 "날아다니는 장수"라는 칭호가 붙었다. 1908년 죽령 등지에서 4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5차례나 일본군을 격파하였고 철원싸움에서도 대승하였다. 동년 10월 여섯번째의 단양전투에서 왜적에게 체포되었으나 대구감옥에서 탈옥, 그후 청풍에서 다시 체포되어 호송도중 탈출하였다. 그후 원세개에게 원병을 요구하는 고종황제의 친서를 가지고 가다가 인천에서 발각되어 체포, 6개월의 형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1922년 3월 군자금을 비밀리에 모금하여 상해임시정부로 가던 중 인천항에서 다시 체포되어 2년간 구류되엇다가 서울에서 재판을 받고 함흥 형무소에서 5년간 복역하였다. 출옥 후 오랜 형무소 생활에서 얻은 병을 회복치 못하고 유명을 달리 하셨다. 위의 내용은 1927년 3월 광복회에서 발행한 "충북의 애국열사편"에 기재된 내용임을 밝혀드립니다. 이 비를 세우게 됨은 조부님의 공적과 대통령표창 및 국민훈장 포상이 청풍 김씨 가문에 영광을 길이 후손에게 전하고자 이 비를 세웁니다. 2010년 8월 8일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