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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개요 을사보호조약이래 항상 비분강개지심을 금치못하여 노련하신 이명상을 총지휘자로 모시고 적주살을 도모하시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서기 1907년 6월에 단양 죽령 청풍 제천 등지에서 주력하여 의병대장으로서 각지에 산재 침입한 일본을 비장의 수완으로 모조리 총살함으로 인하여 기 당시 비호같은 장수라는 칭호가 부여되였음. 당시 27세 서기 1908년 9월애 죽령지역에서 일병 수십명과 치열한 전투 4일간 일병을 섬멸시켰음 서기 1909년 추기에 중국 원세개장군에게 보내는 고종황제의 친서를 봉지하시고 중국향발 권용일 이범규 김규흥 합세 동반 서기 1922년 3월 금은괴 군자금을 소지하시고 상해임정부로 출발중 인천에서 발각되여 서울서 재판을 받고 함경도 함흥형무소에서 5년간 옥고를 하셨음 서기 1881년 1월5일 단양군 가곡면 보발리에서 탄생 한학을 전공 17세시 주사 임관 서기 1929년 7월 16일 서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