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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원 / 1867 ~ 1943 자는 해수(海水), 호는 산재(汕齋), 본관은 진성으로 부의(浮儀)의 아들로서 제천군 덕산면 억수동에 살았다. 박세화에게 배웠는데, 국운이 기울어져감을 보고 월악산에 들어가는 병서를 읽었다고 한다. 을미의병기 이래 이강년과 함께 의진에 종사하였으며, 정미의병에도 이강년의 의진에 독전장(督戰將)으로 종군하면서 갈평, 연풍지구전투 등 여러 곳에서 무공을 세웠다. 특히 탄환의 부족에 시달리던 의진에게 배향산에 감추어 두었던 탄환을 두 차례에 걸쳐 운반한 기록이 있는데, 이 공로로 도총독장(都銃督將)으로 임명되었다. 이강년이 체포된 후, 권용일, 백남규 등과 힘을 모아 항일 의병전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1909년 1월에 잠시 부모를 뵈오려 귀가하다가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특사로 석방되었다. 이후 귀향한 그는 일제에 협조하지 않고 후학을 지도하면서, 곤궁한 만년을 보냈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