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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용규 / 1845~ 1896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으로 함흥에서 출생하였으며, 유중교의 문하이다. 단발령이 내려진 이후 의병을 일으킬 것인가, 망명할 것인가, 자결할 것인가를 두고 처신을 정할 때 유인석과 함께 중국에 망명하여 도를 지키는 쪽을 선택하였다가, 서상렬, 안승우 등 동문후배들이 지평에서 달려온 포군 부대를 맞아 의병에 참여하게 되자 동참하였다. '호좌의진'이 단양군수와 청풍군수 등 친일 관료들을 처단하고 충주성으로 달려가 관찰사를 베고 성을 장악하자 일본군은 성을 도로 빼앗기 위해 집요하게 공세를 퍼부었다. 이때 주용규는 "우리의 도자 보존되고 없어지는 것과 국가의 흥하고 망하난 것이 이 한 번의 거사에 있다"라면서 손수 창을 들고 여러 선비와 함께 남문의 누각에 올라 전투를 독려하다가 유탄에 맞아 순절하였다. 유인석의 참모 겸 의진의 군사로 활동하였는데 봉기 초기의 격문은 하나같이 그가 지은 것이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