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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독립운동사개관 83 서 일본군의 발포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영동 출신 독립유공자 62명 중 37명(60% )이 3·1운동 계열임은 영동지역의 대표적 민족운동이 3·1운동이었음을 입증한다. 그러나 운동 주 도 계층의 사회경제적 실태와 운동계열간 연계 파악은 미진하다고 밝혔다. 특히 영동지역이 다 른 지역에 비해 공산주의 사상수용에 적극적이었던 점은 주요 특징의 하나라는 것이 저자의 견 해 이다. 같은 해 김진웅(1-134)은 가네코 후미코( 金子文子)의 아나키즘 수용과 실천을 고찰하였다. 가 네코 후미코는 민중들의 손으로 기성사회를 파괴시킴으로써 아나키즘의 신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그녀는 박열 등 재일조선인 아나키스트들과 함께 하는 것을 선택하였다. 가네 코 후미코는 이들과 함께 사상 잡지를 발간하여 개인의 자각과 직접 행동을 촉구하였다. 또한 스스로 그 선구자가 되고자 천황과 황태자 폭살 계획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일관된 활동들은 그녀가 박열에 종속된 것이 아닌, 아나키스트이자 항일 투쟁가였음을 보여준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2020년 송선희(1-135)는 金泰熙 (1877~1936)의 민족운동 배경과 활동을 논증하고자 했다. 김태희는 민족운동을 통해 학생들에게 민족교육을 하는 교육가였고, 청년들과 시민들을 계몽 시켜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계몽운동가였고, 일제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활동을 한 독립 운동가였다. 다만 교회와 연계한 민족운동을 펼치다 보니 국내 활동에 국한되었고, 다양한 투 쟁을 펼치지 못한 것은 그의 한계점이라고 논증하였다. 2)비독립운동사연구논문 * 논문의 표기는 저자, 연도, 「논문제목」, 『게재지명』권·호수, 학술단체명의 순으로 하였다. * 단행본이나 보고서의 표기는 저자, 연도, 『서명』, 출판산의 순으로 하였다. 구분 논문 / 단행본 연구별 분류 2-1 오쿠마 쇼지, 1923, 『청주연혁지』 문화 2-2 최치영, 1993, 「1910年代 「 地主會 」의 組織과 活動 」, 이화여자대학원 석 사학위논문 사회 2-3 서순화, 1999, 「충청지역 주민의식의 사회사적 일고찰 - 독립신문을 중심 으로」, 『호서사학』 26, 호서사학회 사회 2-4 강신욱, 2001, 「증평, 괴산 근현대사」, 푸른나라 문화 2-5 김동군, 2002, 「기독교의 충북지역활동 : 일제강점기를 중심으로」, 청주 대학교 석사학위논문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