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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4 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1919년 3월 30부터 4월 3일까지 학산면과 양산면 면민들이 만세시위를 벌였던 곳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 서산리 838-2 일대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 서산리 건물 멸실 - 1919년 3월 29일 영동군 학산면 서산리( 鋤山里)에서는 영동-무주간의 도로공사 부역에 나섰 던 수많은 인부와 양산면민이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당일 사립학교 생 도가 불온한 글을 가졌다고 하여 즉시 검거하여 순사주재소로 데려가 취조하자 군중들은 학생 의 석방을 요구하며 순사주재소로 몰려가 돌을 던지며 공격하였다. 이 과정에서 3명이 체포되 었다. 다음날 3월 30일 양산면 가곡리( 柯谷里)의 이채연(李彩然) 등은 마을 주민들과 함께 독립만 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들은 시위군중들과 함께 학산면 경찰주재소로 몰려가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져 유리창, 전화기 등 기물을 파괴하는 등 시위를 전개하여 구속된 애국지사를 석방시 켰다. 그러나 이후 하사 이하 7명의 지원을 받아 군중을 해산시켰다. 이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한 이채연(李 采然)·이채연(李彩然)·이택주(李宅周 )·이낙연(李洛然)·이 광연(李光然 )·이진국(李鎭國 )·이상찬(李相瓚) 등은 재판에 회부에서 징역 2년을 언도받아 옥고 를 치렀으며, 이낙연은 옥사하였다. 정부에서는 이낙연에게 1991년 애국장을 추서하였고, 이채 연(李彩然)·이택주·이광연·이진국·이성찬 등에게 1990년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4월 3일에는 오후 4시경부터 6시경까지 학산면 서산리 시장 에서 약 30 0명의 군 중이 태극 기를 흔들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날 밤 8시경에는 양봉식(梁 鳳植 )·이기영(李璣榮 )·전재득(全在得) 등은 군중들과 면사무소 건물에 진입하여 출입구 등을 파괴하고, 뽕나무 묘목 28,000개를 뽑아 약 1,000개은 면사무소 구내, 출입구 지붕, 정문 밖 의 도로, 밭 등에 흩어버리며 나머지는 도로에서 불태웠다. 결국 주동 인사들은 체포되어 양봉 식(梁鳳植 )·이기영(李璣榮 )·정해용(鄭海容)·이건양(李建陽 )·전만표(全萬杓)·전재득(全在得) 등 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1990년 이기영· 정해용·이건양·전만표에게 애족장, 양봉식에게 학산경찰주재소 터 3·1운동 만세시위지 3·1운동 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