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0page

820 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1919년 3월 25일과 4월 4일 영동읍민 2천여 명이 만세시위를 벌였던 곳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 계산리 694-17 일대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면 계산리 시장 변형 현충시설(영동 3·1운동 기념비) 1919년 3월 25일 영동면 계산리 영동시장 남쪽 영동교 다리 근처에 ‘대한국독립만세( 大韓國 獨立萬歲)’라고 쓰여진 넓이 4척(尺) 크기의 태극기가 걸렸고, 다른 여러 곳에는 종이로 만든 깃발이 흩어져 있었다. 이에 영동경찰서 일경들이 순찰 중에 발견하고 태극기와 종이 깃발 약 150기를 수거하였다. 이후 4월 4일 오후 2시경 영동장터에서 약 2,000명의 군중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 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일제 경찰은 헌병 보병 20연대 장교 이하 16명의 지원을 받아 군중의 해산을 시도하였으나 군중이 저항하자 무차별 발포를 감행하여 6명이 순국하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조선소요사건의 사상수 건 보고에는 사망자 7명, 부상자 12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지형도에서 보면 시장은 지금의 영동중앙시장 일대이고, 지금의 제1영동교 자리에 는 당시 영동교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시장은 현대화 사업으로 인해 새롭게 조성되었고, 장터 주변은 다수의 건물이 들어서고 도로가 개설되었다. 지금의 중앙사거리 남쪽에는 만세운 동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가 건립되었다. 영동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3·1운동 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