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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독립운동 사적지 기초조사 보고서 82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친일세력이 발호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하였다. 신채호에 천착한 박걸순은 단재의 북한지역 자료도 주목하였다. 그는 「 北韓 소장 미공개 申采 浩 遺稿 의 현황과 성격」(1-122) 글에서 북한이 소장하고 있는 단재 자료가 5천쪽에 달하고, 따 라서 단재의 남북전집을 공동으로 발간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같은 해 박걸순(1-123)은 옥천의 이원과 청산은 충북의 대표적인 3.1운동 지역임에도 이를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한 시설 은 없다고 밝혔다. 전술한 증평 곡산연씨는 연병환, 연병호, 연미당(연병환 딸), 엄항섭(〃사위), 엄기선(〃외손녀) 등 3대 5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가문이다. 박걸순(1-124)이 2백40여쪽의 단행본 『증평 곡 산연씨 일가의 독립운동』을 출간하였다. 각각의 주제는 「연병환의 생애와 민족운동」(박걸순), 「연병호의 독립운동 방략과 노선」(장석흥), 「연미당의 생애와 독립운동」(이명화), 「대한민국 임 시정부에서 김구의 측근으로 활동한 엄항섭」(한시준) 등이고, 김건실이 연병호의 손자 연규의 구술 채록을 맡았다. 그해 박걸순은 「 韓末 陰城 지역의 사회경제적 동향과 의병 투쟁」(1-125) 글을 통해 각종 사료를 분석, 음성지역에 동학농민운동과 의병을 연결하는 이른바 ‘동학의병’ 세력이 존재했음을 논증하였다. 2017년 박걸순(1-126)은 충주출신 류자명의 삶을 조명한 저서를 출간했다. 저서는 류자명의 어린 시절, 독립운동과 아나키즘 수용, 의열단 활동,귀국 좌절 경위 등으로 구성되었다. 그는 또 그해 『한국독립운동사연구』 60집(1-127)에 기고한 글에서 이상설의 독립운동론과 독립운동을 재검토, 깊이 있는 논거를 찾고자 하였다. 충북출신 아나키스트를 연구한 논문이 새롭게 발표되었다. 윤장수(2-95)는 박기성에 대해 민 족주의 계열과 연대하는 입장을 보였고, 따라서 그는 아나키즘 운동의 변화상을 살필 수 있는 주요 인물이라고 밝혔다. 같은 해 박걸순(1-130)은 정순만의 교육구국사상과 청주 덕신학교 설립 과정을 분석하였다. 논문은 새로 발굴한 문중기록과 덕신학교 졸업장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정순만은 덕신학교 설 립을 발의하고 곧 해외로 망명하였기 때문에 학교 운영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 러나 그는 망명 이후 이상설과 함께 서전서숙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해조 신문》의 발행을 주도하며 논설을 통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민족운동 내내 교육구국 사상을 지니고 실천하고자 하였다는 것이 그의 견해이다. 심철기(1-131)는 경기ㆍ강원ㆍ충청 재판기록을 중심으로 1907년 의병전쟁 참여세력의 존재양 상과 일제의 대응 과정을 분석하였다. 당시 사법부가 의병을 ‘폭도’로 규정, 폭력성을 부각시키 면서 교수형 등 극형이 자주 선고되었다. 반면에 귀순하거나 단순 가담자는 면소하거나 비교적 가벼운 형을 선고했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이다. 류자명은 그의 출신지 충주지역 연구가들이 특히 선호하는 주제이다. 2018년 김미화(2-97) 는 석사학위논문에서 류자명을 다시 분석, 그가 독립운동의 방편으로 아나키즘을 수용하였고 그 시점은 중국 망명 후가 아닌 국내에 머물고 있을 때라고 주장하였다. 박걸순(1-133)은 일제 강점기 충북 영동지역의 민족운동을 분석, 그 의의와 특징을 규명코 자 하였다. 3·1운동 당시 영동에서는 5회의 만세운동이 일어났고, 학산면 서산주재소와 영동읍 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