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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6 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1907년 11월 이강년 의병부대가 죽령전투의 연장선에서 고리평에 주둔하면서 사인암에 매복하여 일본군과 교전한 곳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괴평리 271-10 일대 충청북도 단양군 남면 괴평리, 사인암리 산야 변형 - 1907년 11월 이강년(李 康秊 )과 이인영(李麟榮 ) 의병부대가 함께 죽령 일대에서 10일간 일본 수비대와 산발적인 전투를 치루는 과정에서 고리평·사인암에서도 전투를 벌였다. 11월 7일 전 투에서 의병 부대가 초반 승세를 잡아 일본수비대는 죽령으로 후퇴를 거듭했고, 이강년은 군사 를 지휘하여 고리평(대강면 괴평리)으로 나와 주둔하였다. 다음날, 일본수비대가 온다는 말을 듣고 이강년은 좌우선봉장에게 명령하여 사인암(대강면 사인암리) 뒷고개에 매복하게 하였다. 10일에 일본군이 먼저 공격하였지만 의병들이 사인암의 뒷고개와 고리평의 입구에서 매복하여 있다가 일본군을 공격하여 승리하였다. 이 전투로 의병들은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였지만, 일본 군 80명을 생포하고 말 1필을 얻는 성과를 거두었다. 고리평은 지금의 괴평리, 사인암은 지금의 사인암리 일대이다. 전투가 일어난 곳은 사인암 뒷 고개라 하는데, 사인암에서 괴평로로 이어지는 고갯길 일대로 추정된다. 전투지의 자세한 위치 는 2008년 조사에서 단양군향토사연구위원인 지성룡의 증언을 토대로 확정하였다. 현재 이곳 은 926번 지방도 옆의 들판에 해당한다. 고리평·사인암 의병전투지 의병운동 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