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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8 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1907년 9월 영춘면 남천리와 상리에서 이강년 휘하의 의병부대가 일본 수비대와 전투한 곳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상리 461 일대 충청북도 영춘군 군내면 남천리, 상리 산야 변형 - 일본수비대는 의병을 탄압하기 위해 영춘읍내의 일반 민가까지 방화하였다. 이강년은 영춘향 교에 마을 집강을 모아 군수물자를 확보하는 한편, 이명상(李 明相 )과 합진했다. 그리고 강원도 삼척으로 가서 의병을 모집한 소모장 원건상(元建常 )이 도착함에 따라 병력을 증가시킬 수 있 었다. 문경지역에서 일시 합진하였던 청풍 의병장 조종교 부대도 합진을 원하여 함께 주둔하였 다. 9월 24일에 이강년 부대는 남천리 쪽으로 이동하였다. 이튿날, 일본군 병력이 순흥 쪽에서 다 가온다는 정보가 있었다. 이강년은 10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남천리 느릅재[ 楡峙 ] 쪽으로 일 본군을 맞아 나가고, 조동교(趙東敎) 부대는 향교(영춘명 상리 461번지) 앞 산록 쪽으로 나아 가 협공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미 향교에 도착한 일본군은 길가의 골짜기에서 사격을 가해 왔 다. 이에 맞서 의병들도 산위에서 응사하였지만, 탄환이 미치지 않는 형편이었다. 1시간 정도의 접전 끝에 날이 어두워서 성골(남천리 성곡)로 퇴각하였다. 의병과의 교전에서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한 일본수비대는 읍내에 들어가 하리 쪽의 시장에 불을 지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성골 로 물러섰던 이강년은 이명상 · 조동교 부대 일부와 우선봉 백남규 부대를 인솔하여 읍내로 쳐 들어 갔으나, 적은 이미 영월 쪽으로 이동한 후였다. 영춘면 남천리·상리 일대 의병전투지는 의병전투의 특성상 넓은 지역을 아우르고 있다. 각각 의 위치는 2008년 조사에서 단양군향토사연구위원인 지성룡과 현지조사를 통해 위치를 확정 하였다. 조동교 부대가 전투를 치른 영춘향교는 영춘면 상리에 위치하며, 북쪽으로 남한강이 곡 류하고 서쪽과 남쪽으로 각각 도로가 지난다. 일제강점기 지형도에서 보면 향교 주변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현재는 개간되어 밭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강년 부대가 전투를 치른 남천리 느릅재는 지금의 영춘면 하리2리 동쪽 일대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 지형도에서 보면 하2리 일 영춘면 남천리·상리 일대 의병전투지 의병운동 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