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4page

684 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1907년 이강년 의병부대가 숙영하다가 일본군의 습격을 받은 곳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 보발리 333-1 일대 충청북도 영춘군 군내면 임현리 용소동 산야 원형보존 -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출생지인 문경에서 봉기한 이강년(李 康秊 )은 앞서 제천에서 봉 기한 유인석(柳麟錫 )의 막하에서 유격장( 遊擊將)이 되었다. 유인석은 의병을 일으켜 충주·제천 등지에서 부패 관리들을 처단하였으나, 관군에게 패전하여 일단 의병을 해산하고 만주로 망명 하였다. 이강년은 1896년 4월 중국 요동으로 건너가 유인석을 만나고 7월에 다시 단양으로 돌 아왔다. 이강년은 1907년 3월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자 제천에서 재봉기하여 영춘 출신 의병 김상태(金尙台 )와 연합하여 영춘면에 주둔하였다. 이강년이 뜻을 함께 할 포군들을 이끌고 영 춘의 용소동에서 숙영하였는데, 이때 영춘의 순검 및 일본수비대의 야습을 받았다. 수비대의 습격에 놀란 포군들은 흩어지고, 이강년 자신도 왼쪽 뺨과 팔뚝에 큰 부상을 입었다. 그 후, 이 강년은 수 개월 동안 치료를 하면서 영춘·청풍·연풍 등지를 잠행하였다. 용소 의병전투지는 보발2리(용소동) 일대이다. 용소동이라는 지명은 일제강점기 지형도에 확 인할 수 있으며, 이곳에 마을이 조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마을 입구에 위치한 버스 정류장에도 이곳을 보발2리를 용소동이라고 함께 적고 있어 지금까지도 당시의 지명이 남아 있다. 이 일대는 해발 400~500m 정도의 긴 능선이 마을 양 옆을 감싸고 있으며, 마을 앞으로 는 595번 지방도가 지난다. 가곡면 보발리 용소 의병전투지 의병운동 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