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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2 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호좌의진의 의병장 서상렬과 그를 보좌한 의병 김선이의 묘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구곡리 산91-1 충청북도 제천군 봉양읍 구곡리 상구곡 묘소 원형보존 - 서상렬( 徐相烈, 1856~1896)은 충북 제천 출신으로 명문가에서 태어나 무과에 급제하기도 하 였으나, 임오군란 후 묄렌도르프가 등용되는 것을 보고 이를 개탄하고 낙향하여 김평묵(金 平 默)의 문하에 나아가 공부하였고, 후에는 제천으로 이주하여 유중교를 따랐다. 유중교의 사후 에는 한동안 장담 선비들의 강학을 이끌기도 하였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 이 후에는 의병봉기를 주도하였다. 제천에서 이필희 의병이 출범할 때에 군사( 軍師 )로서 추대되어 장회전투를 지휘하였고, 유인석의 호좌의진에서는 영남 초토사( 招討使)로서 활동하면서 의병 을 반대하는 지방관들을 처단하고, 영남 7읍의 의병을 연합하여 태봉의 일본 병참을 공격하는 등 호좌의진과 영남지역의 의진을 연대시키는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관군의 공격으로 의진이 오랫동안 근거지로 장악하고 있던 제천을 빼앗기자, 서북쪽에서 재기할 것을 건의하고 앞장서서 북상길을 개척하다가 낭천(狼川 :지금의 華川 )에서 전사하였다. 김선이(金 仙伊 미상~1896)는 서상렬( 徐相烈) 의진에 가담하여 경기·충청·강원도에서 활약하 였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 이후 경기도 양평지방의 유인석의 제자들은 토적복 수(討賊復讐)를 기치로 하여 거의를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서상렬( 徐相烈)을 중심으로 이필희 (李弼熙)·안승우(安承禹 )·이춘영(李春永 ) 등이 거병하였다. 이 때 김선이는 처음부터 서상렬 의 병장을 따라 다니며 여러 전투에 참가하였다. 제천전투에서 유인석 의진이 패한 후에는 관서지 방으로 이동하였다. 이후 서상렬은 강원도 양구( 楊口) 교내(橋內 )에서 적을 만나 싸우다가 군사 를 이끌고 7월 22일 낭천으로 들어갔는데, 이 때 적의 기습을 받아 전사, 순국하였다. 당시 서 상렬 의병장을 보좌하던 김선이도 서상렬의 시신을 붙들고 적을 꾸짖다가 피살, 순국하였다. 서상렬은 1963년 독립장에 추서되었고, 김선이는 1995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서상렬·김선 이 묘는 국사봉낚시터 캠핑장으로 가는 길을 따라 이동하다보면 캠핑장을 100m 정도 앞두고 도로의 동쪽에 서상렬·김선이 묘소를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이 설치된 바로 뒤편으로 서상렬·김선이 묘 의병운동 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