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4page

644 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1907년 이강년의 우군선봉이 되어 활약한 권용일의 묘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용곡리 146-5 충청북도 제천군 근서면 묘소 원형보존 - 권용일( 權用佾 , 1883~1971)은 제천 출신으로 1907년 군대해산을 계기로 의병에 투신하여 이 강년(李康秊 ) 의진에 가담하여 처음에는 우군선봉( 右軍先鋒), 후에는 도선봉(都先鋒)으로서 청 풍과 충주(忠州 )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천남전투 이래 크고 작은 전투에서 활약하였으며, 특히 그가 의병 봉기 당시에 원주진위대에서 얻어 배향산에 숨겨둔 탄약을 의진에 성공적으로 공급 하는 공을 세웠다. 그러나 12월 영춘 복상골전투에서 패한 후, 이강년이 주력을 이끌고 북상할 때에 동참하지 못하였다. 그 대신 백남규( 白南奎) 등과 함께 이듬해 봄까지 소백산 일대에서 항 전을 계속하였으며, 이강년이 다시 남하하자 병력을 합쳐 경북 북부지역인 서벽, 재산 등에서 전공을 세웠다. 이강년이 체포된 후에는 상경하여 재판 중이던 이강년의 시중을 들었고, 이후 의병의 기세가 크게 꺾이자 수배를 피하여 은둔하였다. 후에 김규흥(金 圭興 )과 이범구(李範九 ), 김규철(金圭喆) 등과 함께 중국의 위안스카이에게 보 내는 고종의 편지를 가지고 출국하다가 발각되어 동지들이 체포되자 정경로(鄭敬老)라는 가명 을 쓰고 산삼 상인으로 가장하여 인천에서 소금 배를 타고 중국 망명길에 올랐다. 이후 이국땅 에서 유랑생활을 하던 권용일은 상해에 임시정부가 조직되자 이에 가담하여 7년 동안 임시정 부와 만주 독립운동가 사이의 연락책을 맡았다. 후에 몰래 귀국하여 은둔생활을 하였으며, 해 방 후에는 충주에 살고 있던 옛 동지 백남규와 왕래하면서 말년을 보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을 기려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권용일 묘 의병운동 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