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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 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1919년 4월 17일 제천장터에서 이범우의 주도로 만세시위가 벌어진 곳 충청북도 제천시 풍양로 108 일대 충청북도 제천군 현우면 시장 변형 - 제천읍 은 충 북의 북 부지방과 강원도 남부지방 생산 물의 집산지로서 상인의 왕 래가 빈번한 고장이므로 일경은 1919년 3월 3·1운동 발발 이래 수비대를 파병하여 삼엄한 경계를 펼쳤 다. 1919년 4월 3일 이범우(李範雨 )는 권종필(權鍾弼 )과 함께 만세시위 할 것을 계획하였다. 그러 던 중 4월 16일 제천공립보통학교 졸업생들이 만세시위를 외칠 계획으로 태극기와 한국만세라 고 적은 깃발을 제작하였다가 발각되어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어 분개한 이범우, 권종필, 이기하(李起夏 ) 등은 전필현( 全弼鉉 )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기로 하였다. 이어 4월 17일 오후 6시 무렵 이들 4명은 시장에 모인 약 1,000여명의 군중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어 시위대는 제천경찰서로 몰려가 만세시위를 전개하자 당시 경찰서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병력 40여 명이 모두 칼을 빼어 들고 시위대를 위협하다가 무차별 사격을 감행하였다. 일제의 발포 로 봉양면 사람 2명, 영월 사람 1명, 단양 사람 1명이 총에 맞아 순국하였다. 이에 군중들은 더 욱 격렬하게 행진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만세시위 전개 중 체포된 이범우는 징역 10개월, 권종필·이기하는 각각 징역 8개월 형을 선고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이범우에게 애족장, 권종필에게 대통령표창, 이기하에게 건국 포장을 추서하였다. 제천지역에는 시청 동쪽으로 2개의 공설시장이 있다. 하나는 중앙시장, 나머지 하나는 서부 시장이다. 이들 시장의 역사를 보면 중앙시장은 조선 후기부터 행상들이 집결하던 곳으로 제천 근방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전통 시장이라고 전하며, 서부시장은 6·25 전쟁이 발생한 1950년부 터 피난민들에 의하여 형성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2008년 조사에서는 제천장터의 위 치를 서부시장 일대로 비정하였으나 시장의 역사를 고려할 때 제천 중앙시장 일대로 보는 것이 옳을 것으로 판단된다. 중앙시장은 1989년 6월 현대적 시설로 재개발하여 지하 1~지상 3층의 건물로 준공하였고, 최근에도 시장 활성화를 위해 건물을 현대화하고 주차장 조성사업 등을 추 제천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3·1운동 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