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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 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조선후기 화서학파의 맥을 이은 유중교가 강원도에서 장담으로 이주하여 살았던 곳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 473 충청북도 제천군 근좌면 공전리 가옥 복원 - 유중교( 柳重敎, 1832~1893)는 조선 고종 때 학자로 자는 치정(穉程 ), 호는 성재( 省齋)이다. 그 는 일찍이 화서 이항로( 李恒老, 1792~1868)에게 배운 뛰어난 학자로서, 이항로의 사후에는 김 평묵(金平默, 1819~1891)을 스승으로 섬겼다. 유중교는 잠시 지평 벼슬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사실상 초야에 묻힌 선비로서 제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그는 1889년 가을 유중교는 제천의 봉양읍 공전리에 있는 장담마을로 이주하여 자리를 잡았는데, 장담마을은 남한강으로 흘러가는 주포천이 감싸 도는 작은 마을이다. 유중교가 장담에 자리를 잡자 유인석(柳隣 錫 )·주용규(朱庸奎 )·서상렬(徐相烈) 등 많은 문인들 이 따라와 가르침을 받았다. 유중교는 스승의 법에 따라 열흘마다 집중적으로 제자들과 함께 경전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을 지속했다. 유중교는 별세하던 1893년까지 장담서사에서 정기적 인 학술토론회를 열어 크게 학풍을 떨쳤다. 송시열-권상하로 이어지는 노론 학계의 강한 영향 을 받아 오랑캐를 배격하는 전통을 강하게 가지고 있던 지역의 식자층도 크게 호응하여 장담에 서 열리는 학술토론회에 적극 참여하곤 했다. 유중교가 세상을 떠나자 선비들은 유인석을 스승으로 받들고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격 동의 시기를 맞아 그들은 경전과 함께 옛 스승들의 삶과 말씀을 반복하여 공부했다. 이들은 이 어지는 변고에 직면하여 일련의 큰 규모의 집회를 열어 사상적 결속을 다지고 의병봉기를 포함 하여 현실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의를 계속하였고, 이는 호좌의진의 봉기와 활동 으로 이어졌다. 이렇듯 제천이 의병의 무대로 부각된 것은 유중교-유인석으로 이어지는 화서학 파 선비들의 활동과 관계가 깊다고 할 수 있다. 유중교 집은 1996년부터 제천의병 사적지 성역화사업의 일환으로 복원이 추진되었다. 초가집 2동으로 이루어졌고, 주위로 담장이 둘러져 있었다. 현재 이 집은 문화관광해설사의 집으로 활 유중교 집 의병운동 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