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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6 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1919년 3월 31일 충주시 신니면에서 동지들과 함께 용원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손승억이 태어난 곳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화석리 797 충청북도 충주군 신니면 화석리 가옥 멸실 - 손 승억( 孫承億, 1893·10.21~1934.4.16)의 호는 태경( 泰慶)이다. 1919년 3월 31일 동지들과 함께 이희갑(李喜甲)의 집에서, 이튿날 신니면 용원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고, 이희갑·이강렴(李 康濂) 등과 독립선언서를 제작하고 등사하였다. 그는 4월 1일 약 200명의 군중이 모인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고,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는 1919년 8월 16일 고등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 의로 징역 8개월 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그러나 청주형무소에서 출옥할 때 옥문에서 대 한독립만세를 고창하다 재수감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다시 2년간의 옥고를 치른 후 출옥하였 다. 출옥은 하였지만 일본 헌병·경찰 등의 감시와 탄압이 계속되자, 1934년 4월 16일 독립만세 를 외치고 목을 매어 자결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손승억 생가 터의 위치는 「손승억 판결문」과 공적조서를 통해 확인하였다. 현재 이곳에는 새 로운 건물이 들어섰는데, 이곳에 거주하는 후손의 증언에 따라 이곳이 손승억 생가 터임을 확 인하였다. 생가가 위치한 방추마을 입구에는 마을 표지석과 손승억 묘소 위치를 알리는 표지판 이 있다. 마을 표지석 하단부에는 이 마을이 손승억 선생이 태어난 곳이며, 이후 3·1운동을 전 개하고 옥고를 치룬 내용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손승억 생가 터 3·1운동 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