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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2 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1896년 2월 6일 이강년 의병부대가 중심이 되어 일본군과 교전을 벌였던 곳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사문리 169-1 충청북도 충주군 석문 건물 멸실 - 충주성에서 퇴각한 의병부대는 병력을 제정비한 직후 공세적 방어에 나섰다. 목표는 일본군 의 병참이 자리 잡고 있는 가흥과 수안보의 공격으로 이곳을 점령하여 재기의 기틀을 마련하 고자 하였다. 가흥은 수운( 水運 )의 의존이 컸던 당시에 일제가 서쪽으로부터의 교통과 물자 유 통을 차단하는 곳이었고, 안보 또한 조령을 통한 영남과의 교류를 중간에서 가로막는 곳이었 다. 따라서 의병이 서쪽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곳의 공략이 필요하였고 이를 통해 의병 재기 를 위한 기틀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수안보 병참기지의 공격은 유격장 이강년이 이끄는 소부대 작정으로 수행되었다. 1896년 2월 유인석 부대의 유격장이었던 이강년은 전군장 홍대석( 洪大錫 )과 함께 약 600명의 의병을 거느 리고 수안보의 남산에 올라가 일제히 함성을 지르고 총을 쏘며 일본군 진지로 돌격했다. 제천의 병과 일본군 간에는 장시간 총격전이 벌어졌고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그러나 의병들은 험준한 산맥에서 작전을 수행하기에 많은 어려움이 따랐으며 군량의 공급이 어려워 물러서기로 하였다. 또한 의병의 수안보 공격 소식을 사전에 입수한 일본군은 충주와 문 경 등지에 요청한 원병이 이미 출동해 있었기 때문에, 의병은 수안보에서 퇴각하지 않을 수 없 었다. 따라서 병력을 돌려 덕주산성 남문 쪽으로 퇴군하였다. 이후 의병은 계속해서 산발적인 전투를 벌였으나 무기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때마다 패배하고 말았다. 수안보 병참기지 터의 위치는 2008년 조사에서 마을 주민의 증언에 의해 현재의 감나무집 식당이 병참부대지라 하여 확정하였다. 이번 조사에서도 해당 위치에는 감나무집 식당이 위치 하고 주변 지형의 변화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2020년 7월에 실시한 1차 학술자문회의에서 수 안보 병참기지 터로 비정한 사문리 석문 일대는 입지 상 병참기기 터로 적절하지 않고 이전에 산림감시소가 있었는데 이것이 지역민들에게 순사처럼 느껴지면서 병참기지터로 와전되었을 수안보 병참기지 터 의병전투지 의병운동 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