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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 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1919년 4월 1일 장연면 주민들이 모여 만세시위를 한 곳 충청북도 괴산군 장연면 오가리 355-1 일대 충청북도 괴산군 장연면 오가리 건물 멸실 현충시설(괴산 3·1운동 7인 열사비) 괴산군의 만세시위는 3월 19일 괴산시장에서 시작되어 군내 각지로 전개되었다. 장연면 오가 리 신촌에 사는 김의대(金義大 )는 1919년 고종의 국장을 보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 머물던 중 3 월 1일 손병희 등이 조선독립선언을 발표하고, 서울 곳곳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는 것을 알고 고 향에서 독립만세시위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독립가( 獨立歌) 1통을 입수하여 고향으로 돌 아온 김의대는 동지를 규합하였다. 4월 1일 밤 김의대·김의현의 주도로 오가리 주민 김일곤(金 日坤)·정해문(鄭海文)·양신집(梁信集) 등과 함께 자신의 마을에서 거사를 계획하였다. 4월 1일 약속대로 오가리 장연면 사무소 앞에는 수백명의 군중이 모였다. 선두에 선 김의현 의 독립선언서 낭독이 끝나자, 김의대가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흥분한 시 위군중은 면사무소로 돌진하여 면사무소 건물의 일부를 파괴하였다. 시위를 마치고 귀가한 김 의현은 자신의 집에 주도 인사 및 주민 30여 명을 모이게 하고 다음날 다시 면사무소에 모여 독립만세운동을 하기로 결의하였다. 그 다음날인 4월 2일 밤, 200여 명의 시위군중이 면사무소를 습격하여 건물을 파괴하고 서 류도 파기하였다. 일제는 연풍면 파견대를 출동시켜 시위 주도자들을 체포하여 연풍으로 연행 하였다. 이로 인해 김의대는 징역 3년, 김의현은 징역 2년, 양신집·김일곤·지도원·정해문은 각각 징역 8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만세시위를 주도한 이들의 공을 기려 김의현·김의대에게는 1990년 애족장을 추 서하였고, 김일곤·지도원·정해문·양산집에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그리고 오가리 신촌마을 입구에는 1991년 대한노인회 괴산군지회가 설립한 3·1운동 7인 열사비가 세워져 있 다. 장연면사무소는 일제강점기 지형도에서 위치가 확인되고 , 20 08년 조사 에서 주민 조수만의 증언을 통해 현재 장연면사무소 앞 게이트볼장이 당시 면사무소 자리임을 확인하였다. 지금도 장연면사무소 터 3·1운동 만세시위지 3·1운동 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