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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 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1919년 3월 19일 괴산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던 인물들이 체포되자 군중들이 몰려가 석방을 요구하며 투석전을 벌인 괴산경찰서가 있었던 곳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서부리 266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면 서부리 건물 멸실 - 1919년 3월 19일 홍명희 등이 주도한 괴산장터 만세시위에 수많은 군중이 모이자 일제 경찰 은 긴급 출동하여 홍명희·이재성·홍용식 등 18명을 체포하고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압수하였 다. 그러자 군중 약 700여 명이 경찰서를 비롯하여 우편국과 군청 등을 습격하여 투석전을 전 개하였다. 사태가 위급해지자 일본은 충주에서 현병경찰관 10명과 보병장교 이하 12명이 파견 되어 경찰과 합세하여 진압에 나섰다. 오후 10시경 경찰서에서 해산시켰으나 이튿날 오후 2시 경까지 만세운동이 곳곳에서 진해되었다. 3월 25일에도 만세운동을 전개한 홍성희 등이 체포된 것에 분노한 군중은 경찰서와 우편국 · 군청 등을 공격하였고, 3월 29일 만세운동에서는 이를 진압하고자 하는 경찰에 항거하여 순 사, 순사보에게 부상을 입히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에 체포된 홍명희는 징역 2년 6개월, 이재성은 징역 2년, 홍용식은 징역 1 년 6개월 형을 받고 옥고를 치러야 했다. 괴산장터 만세운동 탄압의 현장인 괴산경찰서 터는 일제강점기 지형도에 읍의 서쪽에 위치 했 던 것으로 표시되었고, 2008년 조사에서 지역주민인 향토사학자 김근수·이춘택의 증언을 통 해 당시 경찰서의 위치를 확정하였다. 현재 이곳은 괴산경찰서가 새롭게 조성되었는데, 현재 괴 산경찰서 뒷면이 옛 괴산경찰서의 정문이라고 한다. 괴산경찰서 터 3·1운동 만세시위지 3·1운동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