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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 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1919년 4월 1일, 소이면 주민들이 만세시위한 곳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중동리 992-1 일대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중동리 시장 변형 현충시설(기미독립만세 추념비) 1919년 4월 1일, 한천장터에서는 김을경(金 乙卿) 등의 주도로 1,000여명의 군중들이 만세시 위를 하였다. 원래 김을경은 만세시위 이전 한천면주재소에서 독립만세를 부르지 않도록 설득 했던 인물이지만 이후 이중곤(李重坤)이 협의한 후 권재학( 權在學 )·추성렬(秋成烈 )·이교필(李 敎弼 )·이용호(李龍浩 ) 등과 함께 시장에 모인 군중들을 지휘하여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김을경·이중곤은 군중을 이끌고 면사무소로 가서 면장 민병식을 면사무소 앞뜰로 끌어내어 함 께 만세를 외칠 것을 요구하다가 체포되어 소이면 경찰관주재소에 감금되었다. 이에 권재학은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주재소에서 격렬하게 항의하였다. 또한 추성렬과 이교필은 집으로 돌 아가는 군중들을 설득하여 김을경과 이중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 다. 이에 일경은 발포하여 시위를 진압하고자 하였는데, 일제측의 기록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군중 중 사망자 6명·중상 9명·경상 20~30명이 나왔다고 전한다. 만세시위는 주모자 2명을 검 거하고 오후 11시경 겨우 진정되었다. 이로 인해 김을경은 징역 1년 6개월, 이중곤·권재학은 징역 1년, 추성열·이교필은 징역 6개월 의 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으며, 김춘흥·이상근·이용호는 태 90도를 선고받았다. 정부에서 는 만세운동을 전개한 이들의 공을 기려 이용호에게 애국장, 김을경·이중곤·권재학에게 애족장, 추성렬과 김춘흥에게 대통령표창을 각각 추서하였다. 1918년에 제작된 지형도에서 보면 한청장이 표시되어 있는데, 이곳 은 현재 한내 중 동1리에 해당한다. 시장의 북쪽으로는 경찰관주재소, 남쪽으로는 면사무소가 그려져 있다. 한편 2008 년 조사에서 주민 이종헌(중동리 거주)의 증언을 통해 경찰관주재소와 면사무소 터의 위치를 확인하였다. 현재 장은 열리지 않으며, 중동1리에는 비교적 큰 마을이 조성되었다. 마을의 북서쪽에는 한천 3·1만세사적비가 건립되었다. 그리고 중동교 옆에 위치한 마을유래비에서도 만세운동이 내용을 한천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3·1운동 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