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page

이상설생가 315 J i n c h e o n 진 천 조사의견 참고문헌 이상설 생가는 복원되었고, 주변으로 진천군에서 이상설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으므 로 향후 이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상설 공적조서」, 「이상설 공훈록」 이융조·김경표, 1990, 「이상설 생가의 복원에 관한 고찰」, 『호서문화연구』9 진천군지편찬위원회, 1994, 『진천군지』 하기 위하여 일제의 밀정으로 몰려는 음모를 듣고 그는 변명 없이 모든 공직을 사임한 뒤 하 바 롭스크로 이주하였다. 1914년 이상설은 이동휘(李 東輝 )·이동녕(李東寧)·정재관 등과 함께 최초의 망명정부인 대한 광복군정부를 세워 정통령에 선임되었다. 그러나 대한광복군정부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일본과 러시아가 연합국으로 동맹하여 한인의 정치 활동을 엄금했기 때문에, 표면적인 활동을 하지 못한 채 해체되었고 권업회마저 러시아 관헌에 의해 해산되었다. 이후 1915년 상하이에서 박은식(朴殷植)·신규식(申圭植)·조성환(曺成煥) 등과 신한혁명당을 조직하여 광무황제의 중국 망명을 추진하고 독일과 손잡고 일본과 싸울 것을 계획하던 중 탄로나 실패했다. 이상설은 1917년 3월 2일 망명지인 연해주 니콜리스크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상설은 그의 임종을 지킨 이동휘·이회영 등의 동지들에게 “조국 광복을 이루지 못했으니 몸과 유품은 불태우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으며, 이에 따라 유해는 화장되고 문고도 모두 불 태워졌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을 기려 1962년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1997년 복원하기 전 이상설 생가 (진천군 제공) 1998년 복원된 이상설 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