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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 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1905년에 설립된 상산학교가 처음 교사로 사용했던 곳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 381 충청북도 괴산군 진천면 읍내리 381 건물 멸실 - 이상직(李 相稷)은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되어 외교권이 일본에게 박탈되자 국권을 회복하 는 길은 구미 선진 국가의 교육 방법을 도입하여 문명인을 양성하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그해 10월 28일 고향인 진천으로 내려와 사립 보통상산학교를 설립하였다. 자택 객실을 개조하 여 교실을 만들고 사재를 들여 교육 시설을 마련한 다음, 학생을 모집하고 교사를 초빙하여 신 학문 교육을 실시하였다. 상산학교는 진천에 세워진 근대 학교의 효시로서 개교 당시 생도는 4명이었으며, 교육 내용은 한문·국어·산수·지리·역사·법학·체조·가창 등이었다. 학생 수가 점차 증가하여 교실이 협소하자 향교의 명륜당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1909년 당시 진천군수 이택응으로부터 향교 재산 연 수입 조 40여 석과 옛날 현아 터를 학 교 부지로 제공 받아 교사를 신축하였다. 하지만 1910년 강제로 우리의 국권을 빼앗은 일제는 사립학교가 배일사상을 교육한다고 하여 탄압하거나 폐쇄시키고 전국 각처에 공립학교를 세웠 다. 이에 1911년 6월 3일 사립 보통상산학교도 공립보통학교 설립 인가를 받아 9월에 폐교하고 10월 2일에 진천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였다. 1913년 1월 6일 진천읍 읍내 351-1번지로 이전하 여 교사(교실 2, 교장실 1)를 건축하였으며(현재 삼수초등학교 일대), 1940년 현재의 위치로 이 전하고 1941년 진천상산공립보통학교라 개칭하였다. 상산학교의 위치는 2008년 조사에서 상산초등학교의 전 교장 김부웅(진천읍 읍내리, 당시 62 세)이 처음 상산학교가 개교한 위치를 읍내리 381번지(현재 브니엘 환경)로 고증하여 현장을 확 정하였다. 상산학교 터 계몽운동 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