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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254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의열단 소속의 무력 독립운동을 펼친 곽재기가 태어난 곳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상봉리 133-6 일대 충청북도 청주군 강외면 상봉리 75 가옥 멸실 - 곽재기( 郭在驥 ·1893~1952)는 1919년 7월 독립운동에 헌신하기 위해 중국 길림성으로 건너 갔다. 같은 해 9월 상해에서 폭탄을 구입하려다가 실패하였다. 1920년 6월 신흥학교(新興學 校)에 모여 김원봉, 이성우(이명 李成宇) 등을 만나 의열단( 義 烈 團 )을 조직하였다. ‘의열’은 정의 ( 正義)와 맹렬(猛烈 )에서 한 자씩 취한 것으로 ‘천하의 정의를 맹렬히 실천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는 총독부 고관과 친일분자 등을 이른바 ‘7가살( 七可殺)’로 정하고 이들의 제거에 나섰 다. 그리고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비롯한 일제 식민통치 및 수탈기관을 파괴하기 위해 폭탄을 구 입해 경남 밀양에 은닉하였다. 경성으로 밀입한 그는 그후 발생한 밀양경찰서 폭탄사건의 주범 으로 피체돼 10년형을 받고 1922년 1월 22일에 1년10월 감형되어 출옥하였다. 곽재기 생가의 위치는 판결문에 상봉리 75번지로 되어 있으나 오랜 기간 지나며 지번의 변화 가 있었으므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2019년 충북인뉴스에서 곽재기 관련 취재를 통해 주민 증언을 바탕으로 생가 터의 위치를 추정한 바 있는데, 이 또한 증언에 따른 것이므로 보다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곽재기 생가 터 의열투쟁 0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