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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146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1919년 3월 30일 미원면 약 1000명의 군중이 만세시위를 전개하며 습격한 주재소가 있던 곳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면 미원리 536-1 미원치안센터 충청북도 청주군 미원면 미원리 헌병주재소 건물 멸실 - 3월 30일 미원장터 3·1운동 만세시위는 청주군내 만세시위 중 가장 괄목할만한 사건이다. 이 날 신경구는 오후 2시경 약 20명의 군중에게 조선독립만세를 크게 외치라고 권유하고 태극기 를 흔들며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200보정도 떨어진 미원헌병주재소의 헌병들을 출동하 여 해산시키려 하였으나 군중들은 만세를 부르며 저항했다. 이에 헌병들은 신경구를 체포하여 주재소에 유치시켰다. 그러자 주재소로 약1,000명의 군중들이 집결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구 금자 석방을 요구하고 소장을 죽이겠다고 항변하고 주재소를 공격하여 파괴했다. 헌병들도 총 을 발사하여 군중들을 제압하려 하였지만 오히려 군중들은 격렬히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윤인보( 尹仁甫)는 헌병의 칼을 빼앗고 '왜 사람을 죽였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라' 헌병에게 따졌고, 이용실( 李容實)은 주재소를 파괴하고 주재소장을 죽여야 한다고 주창했으며, 이서구(李瑞求), 이성호(李聖浩 ), 신성휴(申聖休)는 '만세를 외치는 것이 무엇이 괘씸하다는 것 이냐? 주재소를 전멸해야 한다'고 소리쳤다. 또한 신정식( 申鼎植), 서정렬(徐正烈 )은 시장에서 귀가하는 사람들을 제지하고 시장으로 돌아가 활동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군중들의 공격으로 주재소 유리창 3장이 깨지고 정문 문기둥이 넘어졌고 판자 담이 부숴졌고 문패가 떨어졌다. 그 러나 헌병 8명은 주도인사와 군중의 활동을 주목하면서 응원대의 도착을 기다렸다가 주도인사 를 체포했다. 윤인보·이용실은 징역 1년, 신정식·서정렬은 징역 10개월, 신성휴·이서구·이성호는 징역 6개월에 처해졌다. 이후 정부에서는 이들의 공을 기려 윤인보·이용실은 애국장, 신정식·서 정렬은 건국포장, 신성휴·이서구·이성호는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미원헌병주재소 터 3·1운동 만세시위지 3·1운동 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