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page

충북 독립운동 유적 기초조사 보고서 102 • 정의 • 현재주소 • 당시주소 • 종류 • 현재상태 • 지정사항 1907년 8월 4일 청주진위대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한 곳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1가 171 충청북도 청주군 북주내면 청주읍성 내 건물 원형보존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09호 1905년 고종은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호소하고자 1907년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하였는데, 이 사건을 두고 일제는 고종에게 퇴위를 강요하였다. 그 결과 고종은 강제 퇴위되고, 순종 즉위 와 이후 1907년 7월 군대가 해산되면서 청주진위대 역시 1907년 8월 4일 청녕각( 淸寧閣 ) 앞뜰에 서 해산되었다. 당시 해산된 군인들은 의병활동에 동참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청주진위대의 해산병 상당수도 의병에 참여하였다. 대표적으로 청주·보은·상주·거창 등지에서 활약한 노병대(盧炳大 ) 의진이 있으며, 이 의진에는 우익장으로 활동한 조용근(趙用根)을 비롯한 청주진위대의 해산병과 경성 시위대 해산병 등이 함께 참여하였다. 이밖에도 일본군 2명을 진천 초평면에서 총살하였다가 피체되어 순국한 배창근( 裵昌根), 하사 출신으로 1907년 음력 12월경부터 원주·충주·음죽 등 에서 활약한 한광문(韓廣文), 일등병 출신 김규환(金奎煥 )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군대가 해산 되기 전에는 1907년 3월에는 청주진위대 대장 유기원(柳 冀元 )을 비롯한 진위대원 318명이 모두 국채보상운동에 참가할 것이라는 취지를 밝히고, 63원 60전을 기성회에 전송하기도 하였다. 군대 해산 이 일어난 청녕각은 본래 청주 동헌의 중심 건물로 청주 목사가 집무했던 곳으 로 1656년(효종7년) 5월 27일에 완공되었고, 1825년(순조 25년)에 다시 지어졌다. 1982년 12월 17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09호로 지정되었으며, 청주시청 제2청사의 건물 뒤편에 자리하고 있고 그 주변은 도시개발로 인해 대부분 변형된 상태이다. 청녕각 - 청주진위대 터 의병운동 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