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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면 3.1독립운동 1919년 3월 1일에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시위가 전국으로 퍼져나갈 때 고종의 장례에 참여하기 위해 상경하였다가 독립선언서를 옷깃에 숨겨 고향으로 돌아온 장유면의 김종훤은 김승태, 이강석, 최현호 등 동지와 회합을 갖고 4월 12일을 거사일로 잡아 군중을 동원하여 무계리 시장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엿다. 4월 12일 정오경 주동자들의 태극기 제조와 인원 동원으로 무계리 시장에 모인 3천여 명의 군중은 김승태 등의 선창에 따라 독립만세를 제창하며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면서 우렁차게 행진하였다. 여기에 일본 군경이 총을 쏘면서 위협하자 격분한 군중은 무계리 헌병분견소로 몰려갔는데, 이 과정에서 일본 군경이 총을 쏘면서 위협하자 격분한 군중은 무계리 헌병분견소로 몰려갔는데, 이 과정에서 김선오, 손명조, 김용이 3인은 일본군의 흉탄에 현장에서 순국하였고, 동지가 쓰러진 광경을 본 군중들은 헌병분견소를 몽둥이와 투석으로 파괴하였다. 이후 증파된 일본 군경의 진압으로 군중은 해산되고 주동 인물은 검거되어 투옥되었다. 장유면민들은 김해에서 가장 크고 격렬하게 일어난 이 독립의거를 기념하고 선열들의 고귀한 넋과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1966년에 장유면 내덕리 용두산 위에 주민들이 힘을 모아 '김해 3.1운동 기념탑'을 세웠고, 이후 매년 기념식을 거행해오고 있다. 장유면 3.1독립운동 중심인물 김선오 / 건국훈장 애국장(1991) / 1865~1919 / 순국, 김용이 / 건국훈장 애국장(1991) / 1891~1919 / 순국 손명조 / 건국훈장 애국장(1991) / 1884~1919 / 순국, 김승태 / 건국훈장 애족장(1991) / 1878~1940 / 징역 2년 김종훤 / 건국훈장 애족장(1991) / 1893~1948 / 징역 2년, 이강석 / 건국훈장 애족장(1991) / 1879~1923 / 징역 1년 조용우 / 건국훈장 애족장(1991) / 1887~1923 / 징역 1년, 조항래 / 건국훈장 애족장(1991) / 1884~1949 / 징역 1년 최현호 / 건국훈장 애족장(1991) / 1890~1974 / 징역 1년, 조용명 / 대통령표창(2019) / 1897~1949 / 징역 3월, 집행유예 2년 김원수 / 징역 3월, 집행유예 2년, 김용주, 안무술 / 징역 3월, 집행유예 2년, 이차수 / 징역 3월, 집행유예 2년 정덕윤 / 징역 3월, 집행유예 2년, 조봉출 / 징역 3월, 집행유예 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