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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회는 파리강화회의(巴里講和會議)에 제출한 파리장서(巴里長書)에 한국 유림 대표의 한 사람으로 서명하였다. 당시 유림계에서는 거국적인 3·1독립선언서의 민족대표에 유학자들이 불참하게 된 것을 통분하고 한국의 독립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요지의 장서를 직접 파리강화회의에 보내기로 결의하였다. 이에 1919년 경남 거창(居昌)의 유생 곽종석(郭鍾錫), 경북 성주(星州)의 장석영(張錫英), 충남 홍성(洪城)의 김복한(金福漢) 등이 주축이 되어 파리장서를 작성, 김창숙(金昌淑)이 이를 소지하고 상해(上海)로 갔다. 이때 이병회는 2,674자의 장문에 곽종석·김복한·김창숙 등과 함께 137명 중의 한 사람으로 서명하였다. 이 파리장서는 다시 파리에 한국대표로 파견되어 있던 김규식(金奎植)에게 송달되었고, 국내외 각 향교에도 우송되었다. 제1차 유림단 운동 또는 파리장서 운동으로 불리는 이 운동은 3·1운동 때 민족대표로 동참하지 못했던 유림 137명이 서명함으로써 명실상부한 민족대연합전선을 완성하였다. 또한 국제사회에 한국의 독립 의지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유림계에도 각성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