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page


70page

정두철(鄭斗澈) - 횡성 읍하리 출신으로 만세운동의 선봉에 서서 독립만세를 가장 먼저 외치며 만세운동의 참여를 호소했다. 조흥열(趙興烈) - 횡성 읍하리에서 쌀가게를 하고 있던 그는 쌀가게를 수리하려고 준비했던 서까래 등 목재를 군중들에게 나누어주며 만세운동을 독려하고 선봉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김순이(金順伊) - 1878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20세가 되던 1898년 10월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박영화와 결혼, 횡성에서 살았다. 30대에 남편과 사별 남매를 키우면서 한치고개에서 주막을 차려 생게를 꾸려갔는데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세어 황소 아줌마라 불렸다. 자신이 운영하는 주막을 독립투사의 모의장소로, 또 푼푼이 모은 돈을 독립운동자금으로 제공하였으며 만세운동 당일에는 군중들을 규합 앞장서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윤석환(尹錫煥) - 윤태환의 형으로 횡성 읍하리에 살았으며 배후에서 횡성 3.1운동을 지도, 지원하였다. 이동구(李東九) - 횡성군 공근면 매곡리에 살았으며 만세운동 당시 태극기를 만들어 돌리며 공근면민의 참여를 독려하였고 면민들과 함께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채일(李寀一) - 횡성 천도교 출신으로 서울 천도교 본부에 근무하면서 횡성 3.1운동에 독립선언서 알선 등의 지원을 하였고 서울의 만세운동 정보를 제공하였다.
70page

횡성 3.1운동 관련 비(非) 서훈(敍勳) 애국지사 윤동선(尹東先) - 윤동선은 횡성 영영포리에 사고 있었으며 당시 25세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총상으로 부상을 당하였다. 최동수(崔東壽) - 횡성 읍하리에 살던 청년회원으로 4.1만세운동에 참여하여 군중을 해산시키려던 고지마료(小島了) 헌병 상등병을 우천면 두곡리 김진대 노인과 함께 말에 끌어내려 구타하고 탈출, 독립운동을 계획하기 위하여 만주를 드나들었다. 김진대(金振大) - 우천면 두곡리 사람으로 일본헌병을 말에서 끌어내려 담뱃대로 때리며 호령하였다. 독립운동을 계속하기 위하여 탈출, 만주로 갔다. 김명기(金明紀) - 김진대의 아들로서 만세운동 추진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일본헌병을 피하고 독립운동을 계속하고자 만주로 망명하였다. 탁영재(卓英才) - 횡성감리교인으로 만세운동에 참가한 후, 항일비밀결사 철원애국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계속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뤘으며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위창래(魏昌來) - 당시 횡성 영영포리 구장이었다. 그는 당시 많은 친일 구장과는 달리 이 마을에서 있었던 3.1만세운동의 계획.추진의 비밀을 일본 헌병들로부터 발각되지 않도록 보장하고 지원하며 만세운동의 거사가 이루어지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