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page


68page

4월 1일 순국한 애국지사 강달회(姜達會) - 강달회는 원주 소초면 둔둔리 출신으로 횡성 천도교를 다녔으며 당시 51세로 만세운동에 앞장섰다가 일본 헌병의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하영현(河永賢) - 하영현은 원주군 소초면 둔둔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27일 횡성만세운동을 이끈 강만형 애국지사가 일본 헌병에 체포되자 이에 격분하여 4월 1일 횡성만세운동을 벌이던 중 순국했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전한국(全漢國) - 전한국은 횡성읍 읍하리에서 살았으며 당시 수로공부(水路工夫)로 일하고 있었으며 앞장서 독립만세를 외치다 총탄을 맞고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강성순(姜聖順, 1893~1919) - 강성순은 횡성군 우천면 법주리 사람으로 일본 헌병의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1977년 대통령표창 추서) 김치정(金治正) - 김치정은 갑천면 매일3리 잔골마을에서 한문서당을 마련해 놓고 10여명의 문하생을 두고 한학을 가르치고 있었던 학식과 덕망이 높은 유생이었다. 스스로 참가하는 수 많은 군민들이 횡성읍내 장터로 모여들때 김치정도 제자 신건수를 대동하고 횡성으로 와서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불렀다. 김치정은 무차별 난사하는 총탄에 맞아 쓰러지고 말았지만 잡히지 않으려고 그래도 현장에서 기어나와 그들에게 발견되지 않았다. 만세사건 후 진골마을로 김치정의 사망소식이 전달되어 진골마을 사람들이 횡성까지 나와서 시신을 몰래 운구, 일경의 눈을 피해 장사를 지냈다. 김치정이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또 순국한 사실은 당시 일본 헌병이 두려워 남들에게 숨겨야 했으며 그 업적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가 제자 신건수의 증언에 의하여 밝혀졌지만 보훈의 대열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김치정처럼 총상을 입고 몰래 집에 가서 죽은 사람이 얼마나 되는 지 철저히 숨기고 비밀로 했기 때문에 알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