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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터(군청 뒤 느티나무) - 이곳은 1919년 4월 1일 횡성군민만세운동 당시 헌병분견소로 가는 길목으로, 일본헌병의 무차별 총격으로 5명의 사망자와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횡성면사무소 터(소망약국 자리) - 이곳은 1919년 4.1 만세운동 당시 횡성면사무소가 있던 곳이다. 일본헌병의 총탄에 맞아 숨진 시위대의 시신 일부가 군의회 위 느티나무 자리에서 이곳으로 옮겨져 밤새 방치되었다. 당시 횡성면 서기 박순기씨가 다음날 아침 광목을 사서 시신을 옮겼는데 피가 땅속까지 스며들었다고 한다. 횡성초등학교 - 횡성초등학교는 1911년 6월 공립횡성보통학교로 개교했다. 1919년 3월 18일로 예정된 6회 졸업식이 끝나면 곧바로 횡성군청 뒷산으로 올라가 만세를 부르기로 결의햇으나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그해 1월 22일 승하한 고종황제를 애도하는 표시로 3월 16일부터 상장(喪章)을 달고 등교하기로 하고 전교생에게 연락해 실행에 옮기면서 4.1 횡성군민만세운동의 도화선에 불을 댕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