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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만세운동의 약사 3월 10일 - 상안흥리 천도교인 장도훈과 영영포리 신재근이 횡성만세운동 결의 3월 11일 - 장도훈이 상경, 횡성 출신 이동구와 만나 대형 태극기와 독립선언서 40매 구입. 3월 16일 - 고종황제 서거를 애도하는 횡성보통학교 학생들 상장(喪章) 패용 등교로 휴교령 3월 26일 - 주동자들이 신재근 집에서 책임자를 정하고 태극기와 독립선언서 배포 결정 3월 27일 - 횡성장터에서 신재근, 장도훈, 안경춘, 강만형 등이 태극기를 배포하고, 읍하리 청년 윤태환이 대형 태극기를 흔들며 300여명과 만세시위를 시작. 일제의 사전조치로 천도교인 8명 포함, 12명이 검거되면서 실패. 이후 횡성천도교 대교구는 횡성청년회, 횡성감리교회와 협력해 치밀한 사전준비로 다음 만세운동에 대비. 4월 1일 - 횡성장날. 아침부터 상점 문을 미리 닫은 상인들과 장꾼 등 수천명의 군중들이 모여들며 만세운동 전개. 날이 저물자 장터에 다시 모인 사람들이 헌병분견소로 향하자 일본 헌병들이 군중들을 향해 총격. 하영현, 강성순 등 5명이 현장에서 숨지고 부상자 속출, 강원도 장관은 시위자가 1,300명에 달했다고 총독부에 보고 4월 2일 - 주민 200여명이 헌병분견소 앞에서 독립운동 허가와 구속자 석방요구 시위, 일제에 항거의 표시로 4월 6일까지 횡성시장 철시 4월 6일 - 횡성시장 철시로 무언의 저항 계속 4월 7일 - 길가에 태극기와 함께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는 선전문 게시 4월 12일 - 서원면 분일리에서 송병기, 성태현, 박민희 등이 주도해 만세운동 전개, 이날까지 횡성에서만 연인원 5,000여명이 만세운동에 참여